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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푸른 보리밭 앞에 서 있다. 저 보리밭 좀 봐! 경치가 정말 넓고 깊다. 보리밭이 스크린을 넘나들며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 멀리 지평선으로 달려간다. 그래서 하늘이 좁아요. 보리세계다. 보리밭이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고, 보리 이삭이 한꺼번에 군무를 추듯 가볍게 떨리고 있다. 보리밭에는 싱그러운 초록빛 공기가 깨끗하게 흐른다. 정중동의 이 세상엔 산수풀, 산수풀, 말벌, 엉겅퀴 등 소박한 야생화가 만개해 있다. 황금 개구리와 흰 나비가 마치 자신의 집처럼 놀고 있습니다. 대지의 생명이 힘차게 흐르는 보리밭이다.

이숙자 화백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40여 년간 꾸준히 보리밭을 그려왔다. 보리밭 그리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는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보리밭에 누드를 그려 한국 전통화의 잔물결을 그리는 유명 화가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마친 그는 다시 보리밭을 그리며 성숙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보리밭은 이숙자의 조형 방법과 정신을 함축한 또 다른 이름이다. 이숙자는 '보리밭 화가'이다.

왜 보리밭을 그려야 하죠? 작가 자신도 "우리 민족에게 '보리 고개'는 가장 힘들고 가파른 배고픔의 언덕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가파른 언덕 너머에는 사람들의 음식이 자라고 있다는 희망도 있었습니다. 보리밭은 귀족들에게는 가난과 가난의 상징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백성들에게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다. 안타까운 분위기 속에서도 보리밭이 눈부신 초록빛을 내뿜는 것은 그런 희망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숙자는 보리밭을 작품 주체의 차원을 넘어 한민족이 품고 온 삶의 감정, 한마디로 희로애락의 감정을 담는 매개체로 삼고 있다. 보리밭을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감성을 펼쳐주는 작품의 '현장'으로 정한 셈이다. 우리는 보리밭의 거친 생명력을 떠올릴 수 있다. 농사일 중에 '보리밟기'가 있다. 추위가 가시기 전에 눈덩이 속에 싹이 튼 어린 새싹을 밟기 위해서다. 이를 '살리기' 위해 거칠게 '죽이기'(밟기)하는 행위인 이 역설은 강한 보리의 생명력으로 전락해 물결치는 능선을 형성하고, 마지막으로 깨지기 쉬운 곡식이다.

그렇다면 이숙자의 '보리밭 미학'은 결국 우리의 '땅'에서 우리의 '마음'을 노래하는 신토불리(神土佛里)의 정신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숙자 자신이 신문 칼럼에서 썼듯이,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불의 철학에 대해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숙자의 보리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해 왔다. 그는 계속해서 스타일을 바꾸었다. 녹색부터 황금빛 보리색까지 다양한 색깔의 변화를 작가의 영감으로 덧칠해 캔버스에 담았다.

초기 푸른 보리밭은 보리알에 주목했다. 그 다음에는 푸른 보리수염으로, 그 다음에는 보리 이삭과 순결한 밀가루로 덮인 보리줄기와 보리잎의 조화, 그리고 빛나는 햇빛 아래서 찬란한 금빛과 은빛 물결을 이루는 황금빛 들판으로….

이숙자의 보리밭은 전체와 부분의 조화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하이라이트나 음영과 같은 명암의 변화는 각각의 알갱이에 꼼꼼하게 포착된다. 보리알이 부조처럼 볼록하게 솟아 있는 가운데 보리알과 수염, 줄기가 생생하게 묘사돼 마치 보리밭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생생한 현실감을 보여준다. 화면과 끈질긴 지구력과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중앙미술대회의 대상을 수상한 작품에 대한 열정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파리만 한 보리 모양을 만들기 위해 얇은 연필로 부드러운 황토색 물감을 바르고, 끝이 뾰족하고 위로 휘도록 각 알갱이의 모양을 그렸다. 한 귀당 30개 정도의 알을 볼 수 있고, 도화판에는 1500개 이상의 귀가 있어 4만5000개 이상의 보리알을 그려야 하며, 이를 7, 8회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보리수염의 경우 보리알의 3배 크기인 약 15만개의 선을 그어 기본적인 작업을 한다. 보리알은 거칠고 뒤틀린 도화판에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수염을 매일 그려서 손바닥이 닳고 피가 맺히는데 (…) 후회가 없을 정도로 많이 그렸는데 완성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숙자의 보리밭은 힘들고 고된 장인정신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그래서, 우리는 왜 보리밭이 수확 과잉이 불가피한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숙자 화백이 현대 전통의 계승에 종종 따르는 허점을 f에서 극복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이숙자는 이브의 보리밭이라는 시리즈를 출간했다. 보리밭에 나체 여성이 대담하고 관능적인 포즈로 등장했다. ≪이브의 보리밭≫에는 피부가 희고 젊은 여성이 무성한 보리밭에 스카프나 단을 두르고 부끄러워하며 주저앉는 장면이 나온다. 검은 음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도 있다. 보리수염의 거친 질감과 여성의 머리카락이 짜릿한 짜릿함을 자아낸다. 이런 대담한 표현은 한국 전통 회화에서는 전례가 없는 '파괴적'이자 '도전적'이었다.

자연과 누드의 기이한 조합, 이것은 실내나 침대 같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누드와는 다른 시각적 영향과 감상의 스릴을 준다. (변위)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이브의 보리밭>은 보리밭의 무대에 나체가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낸다.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와 땅의 정서에 깊이 젖어 있는 보리밭, 그리고 보리밭과 나체의 결합은 우리를 흥미로운 에로티즘의 세계로 이끈다.

옛날부터 시골 초여름의 싱싱한 밀밭은 남녀가 비밀스럽게 사랑을 나누는 비밀스런 만남의 장이었다. '비단 속옷을 입고 보리밭에 가다' '보리밭에 머리를 박기만 하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는 옛말이 있다. 이 속담은 우리 조상들이 봄이면 보리밭에 숨어서 낭만을 즐겼다가 우연히 남에게 들킬까 봐 곡식을 펴고 입을 가렸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그게 다예요? 한국 현대 자연주의 문학에서도 보리밭은 서민의 낭만의 장소로 자주 등장한다. 보리밭에서 일어난 농경문화의 은밀한 성생활을 쉽게 상상할 수 있고, 당시의 성윤리와 시대적 상황까지 감지할 수 있다. 보리밭의 로맨스, 거기에 얽힌 유머, 그리고 같은 것이다.

다만 이숙자의 <이브의 보리밭>을 단순히 보는 이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성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숙자는 어린 시절부터 나체를 꾸준히 그려왔다.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는 것처럼 세계 최초의 여성인 '이브'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1970년대 초 [이브-카라]와 [이브-프리지아]에서, [추상 이브]와 [이브]에서, [이브의 보리밭]이 그 뒤를 따랐다. 특히 1980년대 이후 그려진 <이브> 시리즈는 나체를 꽃 등 화려한 소품과 함께 작품의 대상(소재)으로 다루며 살아있는 현실의 성적 관능보다는 현실을 초월한 환상 속의 여성으로 다가갔다. 미술평론가 오광수가 지적한 대로 이숙자의 이브 그림은 단순한 여성의 나체가 아니라 유배된 낙원이자 원시적인 풍경으로서 원죄와 씨름하는 아득한 원시적인 풍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이 여류작가가 끊임없이 그리는 누드 이브도 남성이 지배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몸짓이다. 이숙자는 앞서 이 성 문제를 다음과 같이 과감하게 표현했다.

"제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벌거벗은 이브'가 제가 평생 고군분투해온 여성들의 굴레와 인습에 대한 저항을 형상화한 자화상인지 궁금합니다. 이런 운명의 굴레를 벗고 관습과 도전에 저항하는 여성의 모습, 그것이 바로 내 사진 속 이브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숙자의 <이브>와 <이브의 보리>에서 피상적인 물질주의를 넘어 자신을 포함한 여성을 해방시키려는 거대한 담론인 그림을 통해 이 땅의 여성을 억압해온 예속의 사슬을 끊는다. 숙자 이씨가 자신의 보잘것없는 소재인 누드나 꽃, 풍경 등을 다루는 화가로 간단히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화가 이숙자는 모더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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